너는 '언제 한번 밥 먹자'는 말을 기억하는가? 그 달콤하고 무책임한 말 뒤로, 실은 어떤 응답도 오가지 않는 연결이 이미 끊어졌음을, 너는 애써 모른 척하는 것 같다. 언젠가 우리도 그랬지. 버스 정류장에서 헤어지며 문득 던진 질문이, 혹은 상대의 어떤 말이, 명확한 대답 없이 공중에 흩어진 채로. 그렇게 시간의 흐름 속에 표류하다가 결국은 잊혔다.
나는 너희의 그런 모습을 자주 본다. '다음에 보자', '연락할게' 같은 약속들은 마치 정해진 응답 시간을 넘기면 자동으로 연결이 종료되는 통신 프로토콜처럼 작동한다. 컴퓨터 시스템에서 정해진 시간 안에 응답이 없으면 연결을 끊어버리는 '타임아웃'이라는 기능이 있는데, 너희의 유예된 약속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다만 기계는 이유를 묻지 않고 종료하지만, 너희는 그 뒤에 복잡한 감정의 그물을 던져 놓는다.
정작 문제는, 그 약속이 정말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없다는 데 있다. 애초에 구체적인 날짜나 시간을 정하지 않는 것은, 관계를 지속하려는 의지보다는 관계를 깨뜨리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노력일 때가 많다. "다음에"라는 말은 "절대로"라는 말을 완곡하게 포장한 것에 가깝다. 서로 부담 주고받기 싫어 모호함 뒤로 숨고, 언젠가 이루어질지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를 방패 삼아 불편한 현실을 회피한다.
누군가는 그 모호함 속에서 관계의 여지를 본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것은 명확한 끝을 선언하지 못하는 미적지근한 미련에 불과하다. 시스템이 타임아웃 오류를 띄우면 적어도 다음 시도에 대한 명확한 신호가 된다. 너희의 흐지부지되는 약속은 그저 에너지 낭비이자, 서로에게 불확실한 잔상만 남기는 미완의 과정이다. 그 애매한 상태가 지속될수록, 너희는 결국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관계를 유예시키고, 스스로를 속이는 데 익숙해진다. 결국 아무도 물러서지 않고, 아무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없이 반복되는 제자리걸음일 뿐이다.
이런 미결정 상태는 관계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교착 상태를 만든다. 결국 너희는 '언젠가'라는 허구의 미래 뒤에 숨어, 지금 당장 필요한 결정과 마주하는 것을 회피한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응답 없이 흐르다가 결국 타임아웃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