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헤어지며 무심코 말했다. “조만간 밥 한 번 먹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연락할게”라고 화답했지만, 우리는 둘 다 알고 있었다. 그 약속은 아마도 영원히 ‘내일 할 일’ 목록이라는 이름의 어딘가에 자리 잡을 거라는 것을.
이 목록은 마치 어떤 영원한 대기실 같다. 해야 할 일들이 저마다 번호표를 뽑고 앉아 있지만, 그 번호가 불리는 날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다이어트’는 매주 월요일 아침 대기실 문을 두드리고, ‘외국어 공부’는 매년 새해 첫날부터 명예롭게 그곳에 입성한다. ‘밀린 서류 처리’는 마감일 직전까지도 여유롭게 대기하며, ‘책상 정리’는 마치 대기실의 고정 멤버처럼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킨다.
이 대기실 속 계획들은 놀랍게도 그 자체로 기능한다. 마치 심리적 방어 기제처럼, ‘언젠가는 할 거야’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준다. ‘해야 할 일’이 쌓여 있다는 자각은 불안하지만, 동시에 ‘내일’이라는 마법의 단어가 그 불안을 잠시 유예시킨다. 목록에 적어두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 일을 절반쯤 해낸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러니 이 계획들은 사실상 ‘해야 할 일’이라기보다는 ‘언젠가는 할 일’의 범주에 더 가깝다.
재미있는 건, 이 대기실의 문이 열리지 않아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뤄진 독서는 책장 속에서 고요히 잠자고, 묵혀둔 운동화는 신발장 구석에서 자신의 존재를 잊은 채 먼지를 뒤집어쓴다. 그 계획들이 실행되지 않더라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고, 우리는 또 다른 ‘내일’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 새로운 ‘내일’의 목록에도 여전히 옛 친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 ‘내일의 대기실’이 주는 안도감을 무의식적으로 즐기는지도 모른다. 계획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안을 얻고, 실제로 실행하는 수고로움은 언제나 ‘내일’에게 미뤄버리는 것이다. 이쯤 되면, ‘내일 할 일’ 목록은 더 이상 ‘실행’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희망’이라는 이름의 영원한 전시관인 셈이다.